매거진
내 기준을 규칙으로 만들기
앞선 글에서 산 뒤에 무엇을 확인하고 언제 정리할지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 확인을 매번 새로 판단하다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기준을 미리 정해 두고 그대로 따를 수는 없을까.
많은 투자자가 같은 자리에서 멈춘다. 무엇을 봐야 하는지는 아는데, 볼 때마다 다른 결론을 내린다. 같은 종목, 같은 숫자를 보고도 기분이 좋은 날과 나쁜 날의 판단이 다르다.
규칙은 그 흔들림을 줄이려는 장치다. 더 똑똑해지려는 게 아니라, 매번 처음부터 판단하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면 물어야 할 건 이것이다. 규칙은 언제 만들어야 하는가.
5줄 요약
같은 상황에서 다른 결정을 하게 되는 이유는 대개 정보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기준이 없어서다.
규칙의 최소 형태는 네 가지다. 무엇을, 언제 사고, 언제 팔고, 얼마나 담을 것인가.
정한 규칙은 과거에 비춰 볼 수 있다. 그때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게 분명히 나뉜다.
과거에만 잘 맞도록 다듬은 규칙은 위험하다. 조건을 늘릴수록 그렇게 되기 쉽다.
좋은 규칙인지는 성적이 아니라 단순한가, 내가 지킬 수 있는가로 가른다. 지킬 수 없는 규칙은 없는 규칙과 같다.
같은 상황, 다른 결정
투자에서 가장 자주 일어나는 실수는 몰라서 생기는 게 아니다. 알고 있는 대로 하지 않아서 생긴다.
내려가면 사겠다고 생각해 두고, 막상 내려가면 더 내려갈 것 같아 사지 못한다. 이 정도 오르면 덜어 내겠다고 생각해 두고, 막상 오르면 더 오를 것 같아 그대로 둔다. 판단이 바뀐 게 아니라, 그때의 기분이 판단을 대신한 것이다.
여기에 뉴스와 주변의 말이 더해진다. 같은 하락을 두고 어떤 날은 기회라고 하고 어떤 날은 위험이라고 한다. 기준이 없으면 그날 들은 말이 기준이 된다.
규칙은 미래를 맞히기 위한 게 아니라, 그날의 기분이 결정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규칙의 최소 형태
규칙이라고 하면 복잡한 공식을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 필요한 건 네 가지다.
- 무엇을 — 어떤 종목이 대상인가. 어떤 조건을 갖춘 기업만 볼 것인가
- 언제 사는가 — 어떤 상태가 되면 사는가
- 언제 파는가 — 어떤 상태가 되면 정리하는가
- 얼마나 — 한 종목에 전체의 몇 분의 몇까지 담는가
이 네 줄이면 규칙이다. 앞선 글에서 적어 두라고 한 “왜 샀는가”를 조금 더 정리한 것에 가깝다. 다른 점은 사기 전에 미리 정해 둔다는 것뿐이다.
네 번째 항목을 빠뜨리는 경우가 많은데, 실제로는 이게 결과에 가장 크게 작용한다. 좋은 판단도 비중이 지나치면 한 번의 실수로 되돌리기 어려워진다.
규칙을 만드는 순서
막상 만들려고 하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하다. 순서를 정해 두면 단순해진다.
하나. 대상을 좁힌다. 시장 전체를 다 볼 수는 없다. 내가 이해하는 산업,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처럼 보지 않을 것을 먼저 정한다. 실제로 규칙의 절반은 무엇을 보지 않을지 정하는 일이다.
둘. 살 조건을 정한다. 어떤 상태가 되면 사는가. 조건은 확인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좋아 보이면”은 조건이 아니다.
셋. 팔 조건도 이때 함께 정한다. 산 뒤로 미루면, 이미 가진 종목에 유리한 쪽으로 정하게 된다. 파는 기준은 사기 전에 정해 두어야 한다.
넷. 비중을 정한다. 한 종목에 얼마까지 담을 것인가. 이 항목이 가장 자주 빠지고, 결과에는 가장 크게 남는다.
다섯. 점검 주기를 정한다. 언제 이 규칙 자체를 다시 볼 것인가. 반년이나 일 년처럼 미리 정해 두면, 그 사이에는 규칙을 흔들지 않아도 된다.
다섯 항목이 한 장에 들어가지 않으면 대개 규칙이 복잡한 것이다.
규칙을 과거에 비춰 본다는 것
규칙의 좋은 점은 확인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머릿속 판단은 확인할 수 없다. “그때 이렇게 했으면 좋았을 텐데”는 기억에 기대는 말이라, 잘된 경우만 남고 잘못된 경우는 잊힌다. 반면 조건이 분명한 규칙은 과거의 값에 그대로 대 볼 수 있다.
이 규칙을 지난 몇 년 동안 지켰다면 언제 사고 언제 팔았을지, 그때 얼마나 내려갔다가 회복했을지를 따라가 보는 일이다.
알 수 있는 것
- 가장 나빴던 구간 — 이 규칙을 따랐다면 어느 정도까지 내려갔을지. 실제로 견딜 수 있는 크기인지
- 얼마나 자주 거래하게 되는지 — 그만큼의 비용과 손이 드는지
- 얼마나 오래 참아야 하는지 — 성과가 나기까지 비어 있는 구간이 얼마나 길었는지
알 수 없는 것
- 앞으로의 성과 — 과거에 잘 맞았다는 사실이 앞으로를 말해 주지는 않는다
- 겪어 보지 않은 상황 — 과거에 없던 종류의 충격은 과거에서 배울 수 없다
- 그때의 내 마음 — 숫자로는 견딜 만해 보이는 하락도, 실제로 겪을 때는 다르다
그래서 과거에 비춰 보는 일의 목적은 좋은 성적을 찾는 게 아니라, 이 규칙이 나에게 무리인지 아닌지를 미리 보는 것이다. 수익이 얼마였는지보다 얼마나 내려갔었는지를 먼저 보는 편이 낫다.
과거에만 잘 맞는 규칙
여기에 함정이 하나 있다. 과거에 잘 맞도록 규칙을 계속 다듬다 보면, 지나간 값에만 정확히 들어맞는 규칙이 만들어진다.
조건을 하나 더 붙이면 성적이 좋아지고, 숫자를 조금 바꾸면 또 좋아진다. 그렇게 다듬은 규칙은 과거를 거의 완벽하게 설명하지만, 그 이유는 대개 그 과거를 보고 만들었기 때문이다.
구분하는 방법은 단순하다.
- 조건이 다섯 개를 넘어가면 의심해 본다
- 왜 이 숫자여야 하는지 설명할 수 없으면 의심해 본다
- 기간을 조금만 바꿔도 결과가 크게 달라지면 의심해 본다
과거를 잘 맞히는 규칙보다,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있는 규칙이 오래간다.
좋은 규칙의 조건
좋은 규칙은 성적으로 정해지지 않는다. 세 가지를 본다.
단순한가. 조건이 적을수록 왜 통했는지, 왜 안 통했는지를 알 수 있다. 복잡한 규칙은 결과가 나빠도 어디를 고쳐야 할지 알 수 없다.
내가 지킬 수 있는가. 매일 확인해야 하는 규칙은 직장이 있는 사람에게 맞지 않는다. 지키지 못하는 규칙은 없는 규칙과 같고, 오히려 어긴다는 감각만 남긴다.
설명할 수 있는가. 왜 이 조건인지 남에게 한 문단으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설명하지 못하는 규칙은 흔들릴 때 지킬 수 없다.
- 장점 — 판단을 매번 새로 하지 않아도 되고, 결과를 두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따져 볼 수 있다.
- 단점 — 규칙은 예외 상황을 담지 못한다. 드물지만 분명한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 유의 — 규칙을 만든 것과 지키는 건 다른 일이다. 대부분의 어려움은 만드는 쪽이 아니라 지키는 쪽에 있다.
모든 걸 규칙으로 만들 필요는 없다
규칙을 이야기하면 모든 판단을 조건으로 바꿔야 할 것 같지만, 그럴 필요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다.
실제로 잘 작동하는 방식은 큰 것만 규칙으로 묶어 두는 것이다. 비중과 파는 기준처럼 결과에 크게 남는 항목은 미리 정해 두고, 그 안에서의 세부 판단은 그때그때 한다.
이렇게 나누면 규칙의 목적이 분명해진다. 규칙은 나를 대신해 투자하는 장치가 아니라, 돌이키기 어려운 결정만 미리 막아 두는 울타리다.
- 장점 — 지킬 항목이 적어 실제로 지켜지고, 판단의 여지가 남아 답답하지 않다.
- 단점 — 재량이 남는 만큼 흔들릴 여지도 남는다.
- 유의 — 재량을 두는 자리와 규칙으로 묶는 자리를 미리 나눠 두지 않으면, 결국 전부 재량이 된다.
규칙이 맞지 않을 때
규칙을 따랐는데 결과가 좋지 않은 구간은 반드시 온다. 그때 두 가지를 구분해야 한다.
규칙이 틀린 것과 규칙이 맞지 않는 구간을 지나는 것은 다르다.
앞선 글에서 비율을 되돌리는 일과 비율 자체를 바꾸는 일을 구분했는데, 여기서도 같다. 성과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규칙을 바꾸면, 바꿀 때마다 최근에 잘된 쪽으로 끌려간다. 그렇게 몇 번 반복하면 규칙은 남아 있지만 기준은 사라진다.
고쳐야 할 때는 대개 이런 경우다.
- 규칙의 전제 자체가 사실이 아니었을 때
- 내 상황이 바뀌어 더 이상 지킬 수 없을 때
- 같은 실수가 반복되는 구조적 허점이 보일 때
모두 성과가 아니라 이유에서 출발하는 변경이다.
지킨 기록을 남긴다
앞선 글에서 산 이유를 적어 두라고 했는데, 규칙에도 같은 게 필요하다. 다만 적는 대상이 다르다. 규칙대로 했는가, 하지 않았는가를 남긴다.
결과는 운이 섞이지만, 지켰는지 여부는 온전히 내 몫이다. 그래서 이 기록이 쌓이면 두 가지가 보인다.
- 어디에서 자주 어기는가 — 사는 쪽인가 파는 쪽인가, 오를 때인가 내릴 때인가. 대개 한 자리에서 반복된다
- 어길 때 무슨 일이 있었는가 — 뉴스였는지, 주변의 말이었는지, 잔고를 자주 본 날이었는지
같은 자리에서 계속 어긴다면, 그건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 항목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는 신호일 때가 많다. 그때는 나를 다그치는 대신 그 항목을 고치는 편이 낫다.
마치며
답은 흔들리기 전이다. 규칙을 만든다는 건 판단을 포기하는 일이 아니라 판단을 미리, 차분할 때 해 두는 일이고, 그렇게 남겨 둔 것이 「차분할 때 해 둔 판단」이다.
흔들리는 날의 나는 그날의 가격밖에 못 본다. 그때 꺼내 쓸 수 있는 건 차분할 때의 내가 적어 둔 것뿐이다.
무엇을 살지, 언제 사고 팔지, 얼마나 담을지를 정해 두고, 그 규칙을 과거에 비춰 견딜 만한지 확인하고, 흔들리는 구간에도 이유가 살아 있으면 지킨다. 이러는 사이에 스스로를 알게 되는 것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가 만든 규칙을 지키기 어려워하는 지점에서 자기 성향을 처음 확인한다.
규칙을 세우기 전에 이렇게 물어보는 편이 낫다.
- 내 규칙을 네 줄로 쓸 수 있는가?
- 이 규칙을 따랐을 때 가장 나빴던 구간을 나는 견딜 수 있는가?
- 결과가 나쁠 때, 나는 무엇을 근거로 지키거나 고칠 것인가?
세 번째 질문에 미리 답해 두지 않으면, 규칙은 잘될 때만 유지된다.
규칙을 만드는 일은 시장을 다루는 기술이기보다, 흔들릴 나를 미리 대신해 두는 일이다.
그런데 어떤 규칙이 나에게 맞는지는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