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는 어떤 투자자인가

앞선 글에서 기준을 규칙으로 만드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어떤 규칙이 나에게 맞는지는 결국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달려 있다고.

이 시리즈는 처음부터 같은 말을 반복해 왔다. 방법을 고르는 일은 나를 알아 가는 일이기도 하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그 질문을 정면으로 다룬다.

 

흔히 투자 성향이라고 하면 3부에서 본 공격형·균형형·보수형 가운데 하나를 고르는 일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건 취향을 고르는 문제가 아니다. 내가 처한 조건을 확인하는 일에 가깝다.

같은 사람이라도 형편이 달라지면 답이 달라진다. 그래서 이 질문은 한 번 답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가끔 다시 물어야 하는 질문이다.

 

5줄 요약

투자 성향은 좋아하는 걸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내가 처한 조건을 확인하는 문제다.

조건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돈이 필요한 시점, 소득의 안정성, 하락을 겪었을 때의 나, 쓸 수 있는 시간이다.

말로 하는 답과 실제 행동은 다르다. 견딜 수 있다고 답한 크기를 실제로 견디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성향은 설문보다 지난번에 내가 무엇을 했는지로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성향은 고정된 성격이 아니다. 나이와 소득, 겪은 경험에 따라 달라지고, 달라지면 구성도 함께 옮겨야 한다.


 

둥근 거울에 비친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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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향은 취향이 아니라 조건이다

“저는 공격적인 편입니다”라는 말은 대개 바람이지 조건이 아니다. 조건은 네 가지를 보면 대체로 드러난다.

 

이 돈이 언제 필요한가

가장 현실적인 기준이다. 3년 뒤에 써야 할 돈과 20년 뒤에 쓸 돈은 같은 방식으로 다룰 수 없다.

기간이 짧으면 회복을 기다릴 시간이 없다. 이때는 성향과 무관하게 출렁임이 큰 자산의 비중을 낮추는 게 맞다. 반대로 기간이 길면 중간의 하락은 지나갈 구간이 된다.

이 항목은 마음가짐이 아니라 일정이다. 그래서 가장 먼저 확인한다.

 

내 소득은 얼마나 안정적인가

매달 들어오는 돈이 일정하면, 시장이 내려가도 생활이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하락 구간에도 계획대로 계속 넣을 수 있다.

반대로 소득이 들쭉날쭉하다면, 하필 시장이 내려간 때에 돈이 필요해질 가능성이 있다. 그때 자산을 깨야 한다면 하락은 지나가는 구간이 아니라 확정된 손실이 된다.

그래서 소득이 불규칙한 사람일수록 당장 쓸 수 있는 돈을 따로 두는 일이 먼저다. 그게 있어야 나머지를 길게 볼 수 있다.

 

하락을 겪을 때 나는 어땠는가

앞의 두 항목이 형편이라면, 이건 나 자신을 보는 항목이다. 같은 하락 앞에서도 어떤 사람은 그대로 두고 어떤 사람은 잠을 설친다.

다만 이 항목은 머릿속으로 답하기가 가장 어렵다. 겪어 보지 않은 하락은 숫자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따로 떼어 아래에서 다룬다.

 

얼마나 시간을 쓸 수 있는가

종목을 직접 고르고 확인하는 일에는 시간이 든다. 분기마다 실적을 확인하고, 산 이유가 유지되는지 보는 일은 관심이 있어야 이어진다.

시간을 많이 쓸 수 없다면 그건 부족함이 아니라 조건이다. 조건에 맞는 방식을 고르면 될 뿐이다. 무리해서 자주 확인하는 방식을 택하면, 결국 확인하지 않게 되고 방치로 끝난다.

 

모래 위에 남은 발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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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하는 답과 실제 행동

성향을 묻는 질문에 사람들은 대개 실제보다 강하게 답한다. “절반이 내려가도 견딜 수 있다”고 답해 두고, 그보다 훨씬 작은 하락에서 파는 일이 드물지 않다.

거짓말을 한 게 아니다. 겪어 보지 않은 하락은 숫자로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화면 속 숫자로 볼 때와, 잔고가 줄고 뉴스가 나쁘고 주변이 불안해할 때는 같은 하락도 다른 경험이 된다.

 

그래서 성향은 설문보다 기록으로 확인하는 편이 정확하다. 이렇게 물어보면 된다.

 

세 번째 질문이 의외로 정확하다. 견딜 수 있는 크기란 생활이 유지되는 크기를 말한다. 수치상 버틸 수 있어도 일상이 흔들린다면, 그건 나에게 맞는 크기가 아니다.

겪은 경험이 아직 없다면, 작은 금액으로 실제로 해 보는 게 가장 빠르다. 상상으로 정한 성향보다 한 번의 하락을 실제로 지나 보는 편이 훨씬 정확하다.

 

성향은 내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지가 아니라, 흔들릴 때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에 드러난다.

 

목표와 성향은 다르다

여기서 자주 섞이는 게 있다. 자리를 짚어 두면 이렇다.

 

하나는 바람이고 하나는 조건이다. 섞으면 바람이 조건 행세를 한다.

목표는 대개 높게 잡힌다. 높은 성과를 바란다고 말하는 건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런 성과가 나오는 길에는 크게 내려가는 시기가 함께 온다. 목표만 정하고 견딜 크기를 정하지 않으면, 그 시기에 계획이 끊긴다.

 

순서를 바꾸면 문제가 줄어든다. 얼마를 벌지를 먼저 정하는 대신, 얼마나 내려가도 계속할 수 있는지를 먼저 정하고 그에 맞는 기대를 두는 것이다. 3부에서 “얼마를 벌고 싶은가보다 얼마나 내려가도 들고 갈 수 있는가를 먼저 묻는 편이 낫다”고 한 것과 같은 이야기다.

바라는 성과가 견딜 수 있는 크기보다 크면, 둘 중 하나는 조정되어야 한다. 조정되지 않으면 시장이 대신 조정한다.

 

남과 비교하게 될 때

성향에 맞춰 정한 구성은 반드시 누군가의 구성보다 못해 보이는 구간을 지난다. 그때가 성향이 흔들리는 자리다.

비교가 어려운 이유는 보이는 게 절반뿐이기 때문이다. 잘된 결과는 이야기되지만, 그 사람이 얼마나 내려갔었는지, 얼마를 넣었는지, 언제 돈이 필요한 사람인지는 보이지 않는다. 조건이 다른 사람의 결과만 떼어 와서 내 기준으로 삼는 셈이다.

 

비교하고 싶어질 때는 이렇게 바꿔 물어보는 편이 낫다. 저 방식이 더 좋아 보이는가, 아니면 내가 저 방식으로 3년을 버틸 수 있는가. 두 번째 질문에 답하다 보면 대개 원래 자리로 돌아온다.

 

성향은 고정된 게 아니다

한 번 확인했다고 끝이 아니다. 조건이 바뀌면 성향도 바뀐다.

결혼이나 이직처럼 돈이 필요한 시점이 달라지는 일, 소득이 늘거나 불안정해지는 일, 큰 하락을 한 번 겪는 일은 모두 답을 바꾼다. 특히 세 번째는 스스로를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통째로 바꿔 놓는다.

 

그래서 성향은 때를 정해 두고 다시 봐야 한다. 앞선 글에서 정한 비율 자체를 바꿔야 할 때가 있다고 했는데, 그 근거가 대개 여기서 나온다. 시장이 바뀌어서가 아니라 내 쪽이 바뀌었을 때 기준을 옮긴다.

 

목록의 항목을 하나씩 확인하는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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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게 확인해 보기

거창한 진단이 필요한 건 아니다. 아래 다섯 가지에 답해 보면 대체로 윤곽이 잡힌다.

 

 

답이 시원하게 나오지 않아도 괜찮다. 답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과, 모른 채로 정하는 건 다르다. 모르는 항목이 있다면 그 항목이 확인될 때까지는 조금 보수적으로 두는 편이 낫다.

 

성향이 정해 주는 것들

성향을 확인하고 나면, 그다음 결정들이 훨씬 단순해진다. 성향은 답을 주지 않고 범위를 좁혀 준다.

 

 

 

어느 쪽이 나에게 맞는가

성향을 확인하고 나면 방식은 대체로 두 갈래로 갈린다.

하나는 종목을 직접 다루는 길이다. 고르고, 이유를 적고, 확인하고, 기준대로 정리한다. 시간과 관심이 필요한 대신 판단의 폭이 넓다.

다른 하나는 이미 묶여 있는 상품을 골라 오래 들고 가는 길이다. 개별 기업을 일일이 보지 않는 대신, 무엇을 담는 묶음인지와 내 비중만 관리한다.

 

어느 쪽이 더 나은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다만 어느 쪽을 몇 년 동안 계속할 수 있는가는 사람마다 분명히 다르다.

 

마치며

투자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질문은 무엇을 사야 하느냐다. 그런데 그 답은 대부분 묻는 사람이 누구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목표는 바꿔 적을 수 있지만 성향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둘이 어긋나면 조정되는 쪽은 늘 목표여야 한다 — 그러지 않으면 시장이 대신 조정한다.

 

같은 종목이 어떤 사람에게는 맞고 어떤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다. 기간이 다르고, 소득이 다르고, 견딜 수 있는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종목을 찾는 일보다 내 조건을 아는 일이 먼저인 경우가 많다.

 

지금 답해 볼 만한 질문은 이렇다.

세 질문의 답이 모이면, 고를 수 있는 방법의 범위는 생각보다 좁아진다. 좁아지는 게 좋은 일이다.

나에게 맞는 투자를 찾는다는 건 더 좋은 방법을 찾는 일이 아니라, 내가 계속할 수 있는 자리를 찾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