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기간을 바꾸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지금까지 여섯 개의 지표를 봤다. 계산 방식은 제각각이었지만 전부에 공통으로 들어 있던 게 하나 있다.
“몇 봉을 볼 것인가”라는 숫자다.
RSI의 14, 이동평균의 20, MACD의 12와 26, 볼린저의 15, 스토캐스틱의 14, 일목균형표의 5와 13과 26. 전부 같은 종류의 설정이다.
이 숫자는 흔히 “세부 설정”쯤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지표의 성격을 가장 크게 바꾸는 값이다.
같은 14를 넣으면 어디서나 같은 것을 재는가. 여기서부터 갈린다.
5줄 요약
지표의 기간은 “며칠”이 아니라 “몇 봉”이다. 같은 14라도 어떤 차트에 올리느냐에 따라 측정하는 시간이 달라진다.
기간을 줄이면 값이 민감해지고 신호가 늘어난다. 늘리면 둔해지고 신호가 줄어든다.
신호가 많다는 건 기회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판단할 일이 늘어나고 비용이 함께 늘어난다는 뜻이다.
지표는 계산에 필요한 봉이 쌓이기 전까지 값을 내지 못한다. 차트 초반이 비어 있는 이유다.
가장 잘 맞는 숫자를 찾으려 계속 바꾸다 보면, 과거에만 잘 맞는 설정에 도달하기 쉽다.

“봉”은 시간의 묶음이다
차트의 봉 하나는 정해진 시간 동안의 시가·고가·저가·종가를 한 덩어리로 묶은 것이다.
일봉이면 하루치, 30분봉이면 30분치가 한 덩어리다. 같은 종목·같은 기간의 가격이라도 어떤 단위로 묶느냐에 따라 봉의 개수와 모양이 전혀 달라진다.
그래서 “RSI 14”라는 설정은 그 자체로는 시간의 길이를 뜻하지 않는다.
- 일봉에 올리면 → 거래일 14일, 달력으로는 약 3주를 측정하는 지표
- 1시간봉에 올리면 → 국내 정규장 기준 약 이틀을 측정하는 지표
- 10분봉에 올리면 → 두 시간 남짓을 측정하는 지표
그래서 기간이 정하는 건 봉의 개수가 아니라 「측정하는 시간」이다. 14라는 숫자는 개수지만, 그 14가 몇 시간이 되는지는 차트 단위가 정한다.
설정값이 같아도 차트 단위가 다르면 다른 지표를 보고 있는 것이다.
봉의 개수로 보면 차이가 더 분명해진다. 국내 정규장은 6시간 30분이고 한 해 거래일은 대략 245일이다. 그러면 1년치 봉의 수는 이렇게 된다.
- 일봉 — 약 245개
- 30분봉 — 하루 13개씩, 약 3,200개
- 10분봉 — 하루 39개씩, 약 9,600개
같은 규칙을 10분봉에 올리면 계산해야 할 봉이 40배 가까이 늘어난다. 신호가 몇 배로 늘어나는 이유도, 확인해야 하는 횟수가 감당하기 어려워지는 까닭도 여기서 나온다.
이 사이트에서 거래 전략의 신호를 계산할 때도 10분·30분·1시간·1일 단위를 각각 따로 다룬다. 같은 설정을 그대로 두어도 단위마다 결과가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단위별로 따로 기준을 잡을 수 있게 되어 있다.

기간을 줄이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기간을 짧게 잡는 건 “최근 것만 보겠다”는 선택이다.
재료가 적어지니 값 하나하나의 영향이 커진다. 결과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난다.
- 값이 크게, 자주 움직인다
- 끝값(예: RSI 30 아래)에 자주 도달한다
- 교차가 잦아진다
- 결국 신호의 수가 늘어난다
흔한 착각이 하나 생긴다. 신호가 늘어난 걸 “기회가 늘었다”고 읽는 것이다.
하지만 늘어난 건 기회가 아니라 판단해야 할 일의 개수다. 그리고 그중 이어지지 않는 신호의 비율은 대체로 함께 늘어난다.
여기에 하나가 더 붙는다. 1부에서 짚었듯 지표는 비용을 계산에 넣지 않는다. 신호가 두 배가 되면 매매 횟수도 함께 늘고, 수수료와 세금, 원하는 가격에 체결되지 않는 차이도 함께 늘어난다.
기간을 줄이는 건 민감도만 올리는 일이 아니라, 비용 구조까지 함께 바꾸는 일이다.
기간을 늘리면
반대쪽도 공짜는 아니다.
기간을 길게 잡으면 값이 완만해지고 신호가 드물어진다. 잔파동에 흔들리지 않는 대신, 실제로 방향이 바뀌었을 때 알아차리는 시점이 늦어진다.
또 하나 자주 놓치는 점이 있다. 기간이 길어지면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진다. 어떤 설정은 1년에 두세 번만 신호를 낸다. 계산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그 방식을 실제로 이어 가려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긴 구간을 견뎌야 한다.
이건 계산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고, 대체로 이쪽이 더 자주 실패의 원인이 된다.
값이 없는 구간이 생기는 이유
차트를 왼쪽 끝까지 밀어 보면 지표 선이 도중에 시작하는 걸 볼 수 있다.
당연한 일이다. 20봉 평균은 봉이 20개 모여야 계산되고, 26봉을 재료로 쓰는 값은 26개가 모여야 나온다. 그전까지는 계산할 재료가 없다.
이 “재료가 쌓이는 구간”의 길이도 차트 단위에 따라 달라진다. 26봉이 필요하다면 일봉에서는 한 달 이상을 기다려야 하고, 30분봉에서는 이틀이면 채워진다. 상장한 지 얼마 안 된 종목의 일봉 차트에서 지표가 한참 비어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지표를 여러 개 겹쳐 쓰면 이 구간이 서로 다르게 시작한다는 점도 알아 둬야 한다. 어떤 지표는 이미 값을 내고 있는데 다른 지표는 아직 비어 있는 구간이 생긴다.
이 구간에서 나온 계산 결과는 일부 지표만 참여한 결과다. 과거를 놓고 검토할 때 초반 구간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아직 끝나지 않은 봉
지표를 실시간으로 보다 보면 이상한 일을 겪는다. 조금 전까지 조건에 맞던 값이 몇 분 뒤에는 아니다.
이유는 단순하다.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봉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표는 대부분 종가를 재료로 쓴다. 그런데 진행 중인 봉의 “종가”는 그 시점의 현재가일 뿐이고, 봉이 마감될 때까지 계속 바뀐다. 그 값으로 계산한 지표도 함께 바뀐다.
그래서 같은 신호라도 두 가지 성격이 있다.
- 진행 중인 봉의 신호 — 빠르지만 사라질 수 있다. 마감 시점에 조건을 벗어나 있으면 없던 일이 된다
- 마감된 봉의 신호 — 사라지지 않는다. 대신 한 봉만큼 늦다
일봉에서 이 차이는 하루지만, 30분봉에서는 30분이다. 짧은 단위를 볼수록 “봉 마감을 기다리는 비용”은 작아지고, 대신 앞에서 본 대로 신호의 개수와 비용이 늘어난다.
지나간 자료를 놓고 검토할 때는 이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알아 둬야 한다. 과거의 봉은 전부 마감된 봉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겪는 출렁임은 검토 결과에 나타나지 않는다.
같은 설정을 다른 단위에 옮길 때
일봉에서 쓰던 설정을 그대로 30분봉에 올려도 화면에는 아무 문제 없이 선이 그려진다. 그래서 옮겨도 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 달라지는 게 여럿이다.
- 측정하는 시간의 길이가 달라진다. 2주짜리 지표가 이틀짜리 지표가 된다
- 신호의 개수가 달라진다. 봉이 많아지면 조건에 걸리는 봉도 그만큼 늘어난다
- 한 봉의 무게가 달라진다. 30분봉 하나의 움직임은 일봉 하나보다 작다
- 확인해야 하는 횟수가 달라진다. 이게 실제로는 가장 큰 차이다
마지막 항목을 가볍게 보지 않는 편이 좋다. 30분봉 기준으로 만든 규칙은 장중에 계속 확인해야 유지된다. 직업이 따로 있는 사람에게는 계산의 정확도보다 이쪽이 먼저 문제가 된다.
어떤 단위를 볼 것인지는 지표의 문제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다.

숫자를 계속 바꿔 보고 싶어질 때
설정을 만지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이 든다. “가장 잘 맞는 숫자를 찾으면 되지 않나.”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과거 구간을 놓고 숫자를 조금씩 바꿔 가며 가장 좋은 결과를 고르면, 그 숫자는 대개 그 구간에만 잘 맞는 값이 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과거 구간에는 우연히 일어난 일들이 섞여 있는데, 숫자를 미세하게 맞추다 보면 그 우연까지 함께 맞추게 되기 때문이다. 기간을 14에서 13으로 바꾸었더니 결과가 크게 좋아졌다면, 그 차이의 상당 부분은 우연일 가능성이 높다.
구별하는 기준으로 삼을 만한 질문이 있다.
- 이 숫자를 고른 이유를 결과 말고 다른 말로 설명할 수 있는가
- 숫자를 조금 바꿔도 결과가 비슷하게 유지되는가
- 다른 종목·다른 기간에 옮겨도 비슷하게 작동하는가
세 질문 모두에 걸린다면 그 설정은 “찾아낸 것”이 아니라 “맞춰 놓은 것”일 수 있다.
숫자 하나를 바꿨을 때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면, 좋아졌다고 기뻐할 일이 아니라 불안정하다는 신호로 읽는 편이 낫다.
그러면 어떻게 정하는가
정답은 없지만, 순서는 정할 수 있다.
먼저 차트 단위를 정한다. 이게 사실상 가장 큰 결정이다. 일봉을 볼 것인지 30분봉을 볼 것인지에 따라 필요한 시간과 확인 횟수가 완전히 달라진다.
다음으로 널리 쓰이는 기본값에서 시작한다. 관습적인 값이 가장 좋다는 근거는 없지만, 최소한 나 혼자 맞춰 놓은 값은 아니다.
바꿀 때는 한 번에 하나씩, 크게 바꾼다. 14를 13으로 바꾸는 것보다 14를 7이나 28로 바꾸는 편이 낫다. 지표의 성격이 실제로 달라지는지를 보려는 것이지, 가장 좋은 숫자를 뽑으려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 설정에서 신호가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를 확인한다. 한 달에 몇 번인지, 1년에 몇 번인지에 따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인지가 갈린다.
마치며
같은 14를 넣어도 어디서나 같은 것을 재지는 않는다. 「측정하는 시간」이 다르면 다른 지표다.
기간은 지표 설정 중에서 가장 사소해 보이면서 가장 크게 작용하는 값이다. 숫자 하나를 14에서 7로 바꾸는 게 다른 지표로 갈아타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낸다.
그리고 이 결정은 계산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어떤 단위를 볼지 정하는 순간 확인해야 하는 횟수와 감당해야 할 비용이 함께 정해진다. 앞의 여섯 글이 “무엇을 재는가”였다면, 이 글의 질문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횟수는 얼마인가”에 가깝다.